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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읽다]3대 게임체인저 '양자', 늑장 투자시 '퀀텀점프' 어려워

정부가 3대 게임 체인저 기술로 지목한 분야 중 하나가 양자(Quantum)이다. 양자는 주로 컴퓨터 분야로 알려졌지만 센서, 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과 활용 가능한 미래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도 향후 집중 육성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경쟁국들의 투자와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지며 우리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만큼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양자, 집중 육성해도 추격 힘겨워= 과기정통부는 최근 발표한 내년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안 24조8000억원 가운데 3대 게임 체인저 기술에 3조4000억원을 배정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에 1조1000억원, 첨단 바이오에 2조1000억원이 각각 투입되는 반면에 양자에는 1700억원만이 투자된다. 전년 대비 증가율이 32.1%나 되지만 초기 단계 산업인 만큼 AI, 반도체, 바이오와 비교해 투자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양자 투자가 2019년 106억원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장세는 두드러지지만 그래도 규모 면에서 만족하기 어렵다.


물론 정부도 양자에 대규모 투자를 예정하고는 있다. 지난해 10월 양자기술산업법이 제정됐고 지난 4월에는 ‘퀀텀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만큼 투자에 대한 의지도 분명하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부터 총 9960억원 규모의 양자과학기술 연구개발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를 추진 중이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과학계 관계자는 "양자 분야는 연구의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구체적인 시한과 목표를 정해야 하는 예비타당성조사의 기준을 맞추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는 양자 투자가 예타를 통과하더라도 규모가 상당폭 축소되거나, 정부가 예타 폐지를 결정한 만큼 제도 변경에 따라 투자 전략을 짜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최근 과기정통부가 정부 출연연구소를 상대로 의욕적으로 선정한 ‘글로벌 톱 전략단’ 사업에서 양자 분야가 제외된 것도 과학계에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양자에 대한 투자는 시급한 상황이다. 과기정통부가 지난달 26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글로벌 연구개발(R&D) 특별위원회 제3회 회의에서 심의한 ‘첨단바이오·인공지능(AI)·양자 글로벌 R&D 전략지도안’에 따르면 양자 기술 중 양자컴퓨터 부문은 기술 수준이 가장 높은 미국이 100점을 받았지만, 한국은 2.3점에 불과했다. 전략지도안은 국가별 기술 수준을 논문과 특허, 전문가 정성평가를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12개국의 기술 수준을 매겨 평가했다. 양자 통신 부문도 미국이 84.8점, 중국은 82.5점이었으나 우리는 2.9점에 머물렀다. 양자 센싱도 한국은 2.9점에 그쳤다.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양자 분야에서 앞서 투자한 미국·중국 등 주요국들과 기술 격차를 좁히기엔 예산의 격차가 너무 큰 때문이다. 양자 분야에서 격돌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경쟁하듯 투자를 늘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까지 약 17조원, 미국도 2022년까지 4년간 3조5000억원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이들 국가는 양자를 미래 게임 체인저, 국가안보 전략기술로 인식하고 2010년 중반부터 국가적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중장기적 기술 로드맵을 제시해왔다. 미국이 양자 정책을 내놓은 게 2008년이다.


양자 분야 조사기관인 QUREC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양자 과학기술 투자 규모는 약 386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매년 빠르게 증가 중이다.


국민의힘 AI반도체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고동진 의원은 "양자 분야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기술이지만 반도체 보안 등 미래산업에 파급효과가 막중한 잠재력이 있는 분야이다.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 늦으면 외국 기업에 안방 내준다= 우리 정부의 양자 전략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추진 속도는 어느 정부 못지않다. 2022년에는 국가 전략기술 육성방안을 마련해 12개 국가 필수전략 기술에 양자 기술을 필수 기반 기술로 선정했고 지난해에는 양자 경제 실현을 위한 3단계 발전 전략과 7대 추진전략을 수립했다. 최근 열린 퀀텀코리아 행사도 양자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다.


이 행사는 지난해 처음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양자 산업에 대한 육성 의지를 확인한 것은 성과였다. 지난달 25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퀀텀 코리아 2024’ 행사에는 영국과 덴마크가 기업과 연구자, 정부 부처 관계자 등으로 대표단을 꾸려 참여하고, 호주, 스위스, 이스라엘 등 9개국 대사관에서도 참석할 정도의 국제적인 행사로 위상이 커졌다.


양자광학과 양자정보과학 석학이자 양자컴퓨터 기업 큐에라컴퓨팅 공동창업자인 미하일 루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특별강연을 통해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그는 그동안 양자컴퓨터의 단점으로 여겨온 오류에 대한 해법이 곧 마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반 컴퓨터는 정보 기본단위로 0과 1만 사용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 1을 동시에 공존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높은 연산 성능을 낼 수 있지만, 계산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빠르게 계산한다고 해도 오류가 있다면 의미가 없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이 양자컴퓨터 성공의 필수 조건인 이유다. 루킨 교수는 "양자컴퓨터 오류 정정 기술 개발이 본격화했다"며 "이 분야를 더욱 탐구하면 대규모 양자컴퓨터 구현을 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행사에서 이목을 끈 부스들은 대부분 외국 기업들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IBM과 아이온큐, 파스칼이다. IBM은 연세대에 설치돼 운영될 예정인 양자컴퓨터 시스템 ‘퀀텀 시스템 원’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IBM은 국내 양자컴퓨터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지를 과시하며 일본에서 실물 크기의 ‘퀀텀 시스템 원’ 양자컴퓨터 시스템 모형을 공수해 왔다. 시스템 원은 연내에 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에 설치돼 가동될 예정이다. 시스템 원은 127큐비트의 성능으로 국내 바이오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존 클라우드 환경을 통해 사용하는 양자컴퓨터에 비해 보다 빠르게 이용할 수 있어 연구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한국계인 김정상 박사가 창업한 아이온큐도 36큐비트급의 양자컴퓨터를 전시했다. 아이온큐는 이온트랩 방식의 큐비트를 이용해 양자컴퓨터를 연구한다. 성균관대와도 협업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등 국내 양자컴퓨터 연구기관들도 각자의 연구 결과를 전시했지만 아직은 해외 연구와의 격차가 많은 상황이다.


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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