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뉴욕주 포킵시에 위치한 IBM을 방문해 퀀텀연구센터에 있는 양자컴퓨터를 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물리학은 흔히 천재들이 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물리학 내에서도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분야로 꼽힌다. 양자역학은 원자나 아원자 입자와 같은 매우 작은 물체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고, 그 입자가 어디로 이동할지, 무엇을 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이를 숨바꼭질 게임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양자역학은 매혹적이고 이상한 학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유명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아무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양자역학 이해의 어려움을 언급할 때 종종 따라붙는 말이다.
전례 없는 효율성을 실현하는 양자컴퓨터
양자역학의 중요성은 노벨위원회가 20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양자역학을 연구한 과학자 알랭 아스페, 존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 3명을 선정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노벨위원회는 “양자 현상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양자정보과학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양자 원격이동 등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조차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면서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과학자에 의해 양자역학은 꾸준히 연구됐고 결국 실험으로 증명됐는데, 이를 증명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노벨상을 받은 안톤 차일링거다.
양자역학은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양자역학의 이론이 아니라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양자컴퓨터에 관해 얘기하려고 한다. 양자컴퓨터란 양자의 고유한 물리학적 특성을 이용해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미래형 컴퓨터를 뜻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0과 1의 비트 단위로 정보처리를 수행하는데, 양자컴퓨터는 0과 1, 양자중첩(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양자가 확률적으로 공존하는 상태)이라는 큐비트(Qubit·양자비트) 단위로 정보처리를 수행한다. 즉 기존 컴퓨터의 트랜지스터 방식이 켜짐 또는 꺼짐 상태를 나타내는 데 반해, 양자컴퓨터는 여러 상태에서 동시에 작동함으로써 전례 없는 수준의 병렬 처리 및 효율성을 실현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로 초고속 병렬연산을 수행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것을 양자컴퓨팅이라고 한다.
과거에 양자컴퓨터는 이론적인 아이디어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여러 글로벌 IT기업들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관련 기술이 급속히 발전되는 추세다. 워낙 중요한 차세대 기술이기에 국가 차원에서도 개발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데 미국, 중국, 유럽, 이스라엘 등이 개발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현재의 양자컴퓨터는 수십 또는 수백 개의 큐비트만 지원해 실제 활용에 제한이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백만 큐비트 이상을 지원하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해 획기적인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의 성능을 앞지르는 것을 뜻하는 ‘양자우위(Quantum Advantage)’를 달성하게 되면 많은 기업이 양자컴퓨터를 다양한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 중 하나인 IBM은 포춘(Fortune) 500대 기업, 학술기관, 스타트업, 국립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IBM 양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IBM 양자컴퓨터 파트너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소니, 골드만삭스, 보잉, 엑슨모빌 등 여러 기업이 포함돼 있다. IBM은 자사 클라우드를 통해 양자컴퓨팅을 제공하며 기존 프로그래밍 언어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접근성을 높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자 클라우드(Azure Quantum)’를 통해 양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바로 코드를 작성하고 실행해볼 수 있도록 무료 크레딧도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자 중심 프로그래밍 언어 Q#을 통해 알고리즘과 애플리케이션을 손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중국에 양자컴퓨터 기술 수출 금지한 미국
아마존도 AWS 양자컴퓨팅센터를 2021년 10월 오픈했고, 양자컴퓨팅 클라우드 서비스 ‘아마존 브라켓(Braket)’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유형의 양자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으며 양자 애플리케이션을 손쉽게 할 수 있는 개발도구도 제공한다.
구글은 양자컴퓨팅 기술을 이용한 양자 AI를 강조하고 있으며 ‘텐서플로 양자(TensorFlow Quantum)’를 선보였다. 이를 이용하면 기존 컴퓨팅 기술과 머신러닝, 양자컴퓨팅 기술을 모두 이용하는 고성능의 하이브리드 AI 모델링을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미래 가치는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 상무부는 2021년 11월 미국 기업이 중국 기업에 양자컴퓨팅 기술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따른 규제 품목에 양자컴퓨터를 추가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주요 동맹국과 양자기술 개발 협력을 위한 기구도 잇따라 설치하고 있다. 일본과는 2019년 ‘양자 협력을 위한 도쿄 성명’을 채택해 양자기술 개발 파트너십을 맺고 있고 유럽연합(EU)과는 양자 정보과학 연구 및 개발 협력 장벽을 낮추기 위한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슈퍼컴퓨터로 수십 년이 걸리는 암호해독을 양자컴퓨터로 풀면 불과 몇 초 내에 가능해 양자컴퓨터 기술이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여러 산업 부문이 말 그대로 ‘퀀텀점프(Quantum Jump·양자가 불연속적으로 도약하는 현상으로 단계를 뛰어넘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기업이나 산업을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한다)’를 할 수 있는데, 관련 기술의 수출을 금지하면 상대 국가의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제대로 쓰이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가량의 세월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난제가 빨리 해결되면 더 당겨질 수도 있고 새로운 난제를 만나면 더 늦어질 수도 있다. 명백한 사실은 양자컴퓨터가 금융·의료·통신·제조·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핵심적인 기술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챗GPT와 같은 생성 AI, 초거대 AI와 양자컴퓨터가 결합하면 인류가 그간 상상만 하던 ‘AI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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