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물질은 우주가 탄생할 때 물질과 함께 생성됐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현재 자연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데다 제어하기가 어려워 과학자들의 주요 탐구 대상이다. 반물질의 성질을 명확히 규명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되면 우주의 비밀뿐 아니라 전자와 광자(빛의 입자)의 상호작용 등을 알아내고 이를 활용해 정밀 기술이나 양자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
요시오카 고스케 일본 도쿄대 양성자과학센터 교수팀이 빠르게 날아가는 '포지트로늄(positronium)'을 레이저를 이용해 극도로 냉각시켜 거의 정지에 가까운 상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포지트로늄은 전자(물질)와 양전자(반물질)가 결합한 입자로 약 10억분의 몇 초에 불과한 극도로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한 뒤 질량과 에너지가 빛(감마선) 형태로 붕괴해 관찰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포지트로늄의 이같은 찰나의 움직임을 제어하면 반물질의 성질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의미가 있다. 연구 결과는 1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됐다.
● 레이저로 에너지 조금씩 방출시켜 냉각
포지트로늄은 전자(-)와 양전자(+)가 각각 하나씩 있는 특이한 입자다. 수소(H) 원자에서 전자(-)와 원자핵인 양성자(+)가 전기적 중성을 이루는 것과는 다른 형태다.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존재하는 시간이 매우 짧고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쉽지 않다.
포지트로늄을 제대로 관찰하고 반물질의 특성을 알아내려면 움직이는 입자를 냉각시켜 정지에 가까운 속도로 감속시켜야 한다. 문제는 포지트로늄이 너무 가벼워 차가운 물리적 표면이나 다른 물질을 통해 냉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약한 레이저를 정밀하게 조작해 포지트로늄을 냉각하는 데 성공했다.
온도는 어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가 가진 운동에너지를 뜻한다. 레이저 냉각법은 빛 에너지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가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물체의 운동에너지를 줄여 온도를 낮추는 방법이다. 레이저 냉각법은 여러 분야에서 이미 쓰이던 방법이지만 포지트로늄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포지트로늄의 질량이 매우 작아 레이저의 에너지의 반작용을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지트로늄을 구성하는 전자와 양전자의 질량은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나 중성자보다 약 1800배나 가볍다.
연구팀은 레이저의 세기를 정밀하게 조절하고 레이저의 파장을 연속적으로 보내 포지트로늄의 에너지 상태가 작은 차이만큼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빛의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도록 했다. 유종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포지트로늄이 에너지를 방출할 때 무작위 방향으로 방출하기 때문에 이를 반복하면서 운동에너지가 낮아지며 냉각되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새로운 레이저 냉각법을 활용해 1000만분의 1초 만에 포지트로늄 일부를 1K(켈빈·절대온도의 단위로 0K은 약 -273℃) 수준으로 냉각하는 데 성공했다. 유 교수는 "포지트로늄의 생존시간이 142ns(나노초, 10억분의 1초)에 불과한데 이 시간 동안 거의 정지에 가깝게 냉각하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현대 양자 이론 증명에 활용 기대
포지트로늄을 붙잡아두면 이를 활용해 다양한 현대 물리학 이론을 증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유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주의 물질·반물질 비대칭성 등 우주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신 전자기학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이론인 양자전기역학(QED) 이론 등을 증명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기적 성질을 띠는 가장 작은 단위가 바로 포지트로늄을 구성하는 전자(-)와 양전자(+)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또 "온도를 매우 낮춰서 포지트로늄을 특별한 양자 상태인 '보스-아인슈타인 응집체(BEC)'로 만들면 특정한 상태의 광자를 발생시킬 수 있는 유용한 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개발한 레이저 냉각법이 다른 특별한 입자들을 냉각하는 데도 쓰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물질(antimatter)
입자물리학에서 전자는 음 전하(-)를 띤다. 질병 진단을 위한 양전자단층촬영(PET)에 쓰이는 양전자(positron)는 전자와 질량 등 성질이 모두 같고 전하만 반대다. 이때 양전자나 반전자를 전자의 '반물질(antimatter)'이라고 한다.
동아사이언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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