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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걸친 난제’ 양자 세계서 제4의 상 ‘네마틱’ 세계 첫 관측

스마트폰 화면 등에 쓰이는 액정(Liquid Crystal)은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닌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와 같은 상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의 김범준 부연구단장 겸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연구진이 양자 물질에서 액정과 유사한 물질 상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


대부분 물질은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으로 존재한다. 액정을 포함한 제4의 상인 ‘네마틱’은 액체와 고체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다. 액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고체처럼 분자의 배열이 규칙적이다. 네마틱 상이 양자역학적인 스핀 계에서도 존재할 것이라는 이론적 예측은 반세기 전부터 있었지만, 실제 물질에서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석은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된 고체 상태다. 자석에서 스핀은 자석의 N극과 S극이라는 두 개의 극으로 이뤄진 자기 쌍극자를 형성한다. 반면 스핀 네마틱은 자성은 없지만 네 개의 극으로 이뤄진 사극자가 정렬되어 있는 상태다. 기존 개발된 중성자 산란 등 대부분의 실험 도구는 쌍극자에만 민감하게 설계되어 스핀 네마틱을 검출하기 어려웠다.


이를 살피기 위해 연구진은 사극자의 존재를 X선을 이용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를 설계했다. 먼저 연구진은 미국 아르곤연구소와 협업해 공명 비탄성 X선 산란 장비(RIXS)를 약 4년에 걸쳐 개발했다. 이후 포항가속기연구소 등 가속기 빔라인에 개발한 분광기를 구축해 실험을 진행했다.

이후 연구진은 유력 고온 초전도체 후보물질로 꼽히는 이리듐 산화물에 X선을 조사하며 스핀의 거동을 관찰했다. 이리듐 산화물은 영하 43.15도(230K) 이하의 저온에서는 쌍극자와 사극자가 공존했지만, 영하 13.15도(260K)까지는 쌍극자가 사라져도 사극자가 남아있었다. 이 온도 범위에서 스핀 네마틱 상태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네마틱 상의 발견은 물리학자들의 숙원 과제인 스핀 액체 탐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조길영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컴퓨터 등 양자 정보 기술에 활용하기 위해 학계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스핀 액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며 “스핀 네마틱은 스핀 액체와 공통적인 물리적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스핀 액체 탐색의 핵심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이번 연구는 이리듐 산화물에서 고온 초전도 상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론적으로 스핀 네마틱 상도 스핀 액체처럼 스핀 양자 얽힘을 통해 고온 초전도 현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에서 이리듐 산화물의 전자 농도를 변화시켜가며 고온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지 조사해 볼 계획이다.


김범준 부연구단장은 “RIXS는 양자 간섭을 통해 스핀 상호작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X선 과학 분야에서 지난 10년 간 가장 주목받은 기술 중 하나”라며 “이번 연구는 국내 방사광 X선 실험 인프라 및 활용 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달 14일(한국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실렸다.


조선비즈 홍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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