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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 상용화 성큼… 약효 결정하는 전자구조 보며 신약 개발”[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올해 6월 25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퀀텀코리아 2024’ 전시회에서는 양자컴퓨팅 산업의 빠른 발전을 기대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발표가 있었다. 국내 양자컴퓨팅 알고리즘 개발 스타트업인 큐노바(대표이사 이준구)가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에 쓰일 수 있는 정확하고 빠른 양자 알고리즘(소프트웨어)을 세계에서 처음 시연한 것이다.


12일 대전 유성구 본사에서 KAIST 교수(전기 및 전자공학부)인 이준구 큐노바 대표이사(59)를 만났다. 그는 “순수하게 알고리즘만으로, 기존 양자컴퓨팅 자원의 1000분의 1만 가지고도 100배 더 정밀하게 화합물의 전자 분포를 오류 없이 계산해 낸 것”이라며 “지금 나오고 있는 불완전한 중간 규모의 양자컴퓨터로도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세계 최고 수준의 결과”라고 했다.


흔히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가 수십 년 걸릴 계산을 단 몇 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기로 묘사된다. 구글은 2019년 자사의 양자컴퓨터 ‘시카모어’가 양자 난수 생성과 검증에서 슈퍼컴퓨터보다 우위에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IBM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는 물론이고 핀란드의 IQM 같은 회사들은 개인이나 기업들이 상업적으로 접근 가능한 양자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 물류나 공급망 관리 같은 최적화 문제, 암호 해독 분야 등에서 슈퍼컴퓨터보다 훨씬 효율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양자 상태인 큐비트를 기반으로 계산을 수행하기에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열이나 전자기장 등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민감해 잘못된 값을 내놓기도 한다. 큐노바는 양자컴퓨터의 불안정성을 알고리즘으로 극복해 양자컴퓨팅의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 화합물의 효능을 미리 계산해 예측


큐노바는 6월 말 전시회에서 핀란드 IQM사의 초전도 양자컴퓨터와 오스트리아 AQT사의 이온트랩 양자컴퓨터에 접속해 리튬황화물과 황화수소, 물분자, 암모니아 등의 전자 분포를 에너지 분석을 통해 이론값에 가깝게 계산해 냈다.


특정 화합물의 전자 구조는 해당 화합물의 화학적 성질과 반응성을 예측하는 데 중요하다. 특정 약물이 항원에 강력하게 접촉하는지 등을 예측함으로써 약물의 효능을 검증하는 식이다.


양자컴퓨팅에서 알고리즘의 역할은 중요하다. 첫 번째는 양자컴퓨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계산의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역할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양자컴퓨터는 양자 상태인 큐비트의 오류를 물리적으로는 정확히 보정하지 못해 계산 도중 잘못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예컨대 1+3을 계산하는 문제를 양자컴퓨터로 계산한다고 했을 때 확률적으로 4가 아닌 다른 값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알고리즘의 보완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양자 상태의 큐비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양자적으로 반응하는 원자 단위의 물리적 상태를 모의하는 데 탁월한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기존 컴퓨터로 양자 상태의 물리 현장을 모의하려면 복잡한 계산식으로 많은 컴퓨팅 자원이 소모되지만 양자컴퓨터에서는 이를 훨씬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구현할 수 있다.


큐노바가 개발한 알고리즘에는 ‘인계 반복 변분 양자 고유값 해법’(HIVQE·Handover Iteration Variational Quantum Eigensolver)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정 화합물의 특성을 알려면 그 화합물 내 전자들이 분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에너지 상태를 찾아야 하는데, 그걸 찾는 알고리즘이다. 기존에 있는 방식(VQE)에 큐노바가 개발한 단순하지만 정확한 알고리즘이 결합됐다. 이 대표는 “지금 나와 있는 ‘노이즈가 있는 중간 규모 정도의 양자컴퓨터(NISQ)’를 신약이나 신소재 연구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곧 열릴 것”이라고 했다. 노이즈가 있다는 말은 계산 결과가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큐노바는 HIVQE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화합물의 전자구조를 해석하는 플랫폼(펄사·Pulsar)을 90% 정도 완성한 상태다.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에서 특정 화합물이 어떤 효능을 낼 것인지를 전자 분포를 직접 계산해 미리 알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기존에는 특정 화합물을 직접 만들어 효능을 알아냈다면 이제는 전자의 분포를 직접 계산하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새 물질을 합성하는 것이다. 큐노바는 펄사를 기반으로 현대자동차와 포스코홀딩스 등과 협업하기도 했다.


● 근본부터 다른 신소재-신약 빠르게 발굴


큐노바는 신약 및 신소재 후보 물질을 빠르게 찾아주는 플랫폼(밀키 웨이·Milky Way)도 개발하고 있다. 이는 양자 기반 분자 조각 조합 신약개발법(양자 FBDD)을 기반으로 한다. 양자컴퓨팅을 활용해 분자의 전자 분포를 계산해 화합물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또 작은 분자 조각들이 표적 단백질과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분석해 유효한 약물 후보를 도출한다. 1억 개 이상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화합물을 정교하게 구별하고 선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의 일반 컴퓨팅으로는 풀지 못하는 양자 모델링 등을 통해 최우선 후보물질을 발굴토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 대표는 “현재 업계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후보 물질을 학습시키고 있지만 기존 약물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혁신적인 신약이나 신소재를 찾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밀키 웨이가 완성되면 분자 조각들의 다양한 효능에 대한 데이터로 훨씬 효과가 좋은 신약이나 신물질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기존 약물을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혁신적인 신약 개발이 많아질 것이다. 큐노바는 현재 밀키 웨이를 50∼60% 정도 구축한 상태다.


● 2000년 초반 양자컴퓨팅과 인연 후 창업


이 대표는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로 양자 정보 및 통신 연구실도 운영하고 있다. 양자 보안 통신과 양자 기계 학습 등도 연구 분야다. 1995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제라드 무루 교수 연구센터에서 양자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일본 NEC가 미국에 세운 NEC연구소에 들어가서 당시 세계적으로 이론이 나오고 있던 양자컴퓨팅 연구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다가 실제 양자컴퓨터가 개발되지 않아 관심을 접어 두었다가 큐비트 2∼3개짜리 양자컴퓨터가 출현하기 시작한 2012년경부터 다시 양자컴퓨팅 연구를 본격화했다.


큐노바는 2021년 교원창업으로 설립했다. 이후 토론토대의 양자 기술 기반 스타트업 보육 프로그램(CDL 양자스트림 과정)을 완료했다. 양자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을 보육하는 곳으로는 유일한 곳이다. 큐노바는 50개 팀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0개 팀 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양자 기술로 어떤 사업이 가능할지 검증을 받는 과정 중에 40개 팀은 사업성이 불분명해 포기한 것”이라며 “전 세계 양자 기술 기업이나 투자자들과 네트워킹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큐노바가 6월에 시연한 양자컴퓨터는 20큐비트 기반이다. 유효하게 작동하는 큐비트가 40∼60개 정도 되면 양자컴퓨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대표는 “내후년 정도면 그런 시대가 될 것”이라며 “올해 말까지 60큐비트에서도 작동하는 펄사 플랫폼을 완성해 세계적인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동아일보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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