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양자통신 같은 양자기술 발전에 필요한 양자역학 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성과가 학계에서 나왔다. 양자통신을 위한 ‘양자얽힘’ 현상을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조건에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활용해 쿼크 간 양자얽힘 현상을 처음으로 관측하고 이 연구성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18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연구팀은 “기존에 접근할 수 없었던 에너지 범위에서 양자얽힘을 측정했다”며 “새로운 방법으로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시험하고 새로운 물리학 현상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양자얽힘은 두 입자 중 하나의 상태가 정해지면 다른 하나의 상태도 따라서 정해지는 관계를 가진 양자역학적 상태다. 비유하면 앞면인지 뒷면인지 상태를 모르고 50대50의 확률만 아는 두 동전 중 하나의 상태가 앞면으로 확인될 경우 나머지 하나의 상태는 확률에 의해 자동으로 뒷면으로 확정되는 관계다. 원자나 전자처럼 작은 입자도 위나 아래 방향을 갖는 ‘스핀’이라는 특유의 상태를 띠며 양자얽힘 상태의 두 입자는 원격으로 스핀 상태라는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먼 거리에서도 즉각적 정보 교환이 가능해 현재 양자통신 기술로 응용되고 있다.
양자통신을 포함한 양자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양자얽힘에 대한 연구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 학계는 초저온의 저에너지 상태의 입자를 통해서만 양자얽힘을 관측하고 이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실정이다. 양자얽힘은 관찰에 필요한 광자(빛 알갱이)를 포함한 외부 영향으로부터 입자를 차단해야 유지되기 때문이다.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입자 움직임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는 초저온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자역학 효과를 응용한 양자컴퓨터도 현재 대부분의 시제품이 초저온을 필요로 한다.
반면 쿼크는 이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를 가진다. 쿼크는 원자를 이루는 원자핵, 다시 그것을 이루는 양성자를 이루는 물질의 최소단위 입자인 기본입자다. 원자핵을 여러 양성자들로 쪼개는 데도 상당한 에너지의 핵반응이 필요한데 이보다 더 큰 에너지를 들여 양성자를 또다시 쪼개야 쿼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둘레 길이만 27km에 이르는 도넛 모양으로 설치된 LHC 안에서 두 양성자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광속에 가깝게 가속한 후 충돌시켜야 양성자가 쪼개지며 쿼크가 튀어나온다. 이마저도 인위적으로 만든 불안정한 상태라서 쿼크는 ‘10의 25제곱 분의 1초’의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또다른 양성자 같은 더 안정적인 입자로 변하며 붕괴해버린다. 에너지 조건으로나 관측 가능한 시간으로나 쿼크의 양자얽힘을 관측하는 일이 물리학계의 난제로 꼽혀온 이유다.
연구팀은 붕괴 생성물, 즉 쿼크가 붕괴하며 만들어진 입자의 스핀을 측정해 기존 쿼크의 스핀을 추론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이를 통해 쿼크들의 스핀 상태를 파악했고 이들 중 양자얽힘 관계의 쌍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로써 저에너지 입자로만 가능했던 양자얽힘 연구가 고에너지 입자를 대상으로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양자얽힘 같은 양자역학 효과를 초저온의 저에너지를 넘어 고에너지 조건에서도 구현하는 일은 양자기술 상용화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네이처는 “앞으로 고에너지의 얽힘 실험이 가능해졌다”며 “CERN 연구팀이 이룬 업적으로 고에너지 입자의 양자 정보를 더 탐구하는 문을 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경제 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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