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양자 기술, 첨단 바이오, AI 반도체 같이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R&D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제도 개편 차원이다.
29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정부는 다음 달 열리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예타 개편안을 포함한 R&D 시스템 개편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는 R&D 제도 개편 세부방안은 결정된 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R&D 예타는 폐지로 검토 중인 게 맞다”고 말했다.
예타 제도는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의 경제성을 검토하기 위해 마련됐다. R&D 분야의 예타는 정부 R&D 예산이 5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을 대상으로 경제성을 평가한다.
과기계에서는 예타 제도가 경제성을 지나치게 감안한 나머지 적시성과 수월성, 혁신성을 우선시 해야 하는 R&D 사업에서 경제성을 따지게 하는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R&D 예타 제도 개선을 추진해 왔다. 지금까지 제시된 방안은 R&D 예타 대상을 500억원 이상 사업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높여서 면제를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획기적’인 변화를 강조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연구자들이 제때 연구에 돌입할 수 있도록 R&D 예비타당성조사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총선 패배 이후 첫 외부 공식 일정에서 R&D 예타 개혁을 선언한 것이다. 이후 과기정통부와 기재부는 R&D 예타를 축소하는 게 아니라 폐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과기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가 R&D 체계를 선택과 집중하겠다고 밝힌 만큼 대형 R&D 사업의 빠른 진행을 위해서는 걸림돌이 되던 예타 제도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양자 기술, 첨단 바이오, AI 반도체 같은 전략기술 분야의 연구자들은 특히 반기고 있다. 양자 기술 분야의 한 출연연 책임연구원은 “예타 제도는 R&D 사업이 아닌 건설, 인프라 사업에 적합한 평가 제도였다”며 “R&D 사업에 맞는 적당한 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R&D 예타를 폐지하는 대신 전문가의 검토와 대안 제시를 바탕으로 R&D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또 부처 간 중복·유사 R&D를 방지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사업 심의도 강화할 방침이다.
조선비즈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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